2017년 7월 25일 화요일

부동산 전자계약, 8월 1일부터 전국 확대 시행

부동산 전자계약, 8월 1일부터 전국 확대 시행
- 공인중개사협회, LH공사 등 공기업,
  은행권도 적극 참여하기로

부서:부동산산업과     등록일:2017-07-25 14:00

앞으로 전국의 모든 부동산 거래에 있어
종이 계약서가 필요 없어진다.
또한 매매계약 신고를 늦게 해
과태료 처분을 받는 일도 없어질 전망이다.







‘아파트 콘크리트 갈라지는데-하자 아니라는 국토부 고시’ 보도 관련

[참고] ‘아파트 콘크리트 갈라지는데-하자 아니라는
국토부 고시’ 보도 관련

부서:주택건설공급과    등록일:2017-07-25 17:24

「공동주택 하자의 조사, 보수비용 산정 및
하자판정기준」에서 공동주택 콘크리트 균열은
건조환경 0.4mm, 습윤환경 0.3mm 이상일 경우
균열하자로 판정하여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콘크리트의 양생 및 피복두께* 등에 의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균열로, 건축공사표준시방서,
콘크리트구조기준에도 규정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 철근 표면에서 콘크리트 외면까지 콘크리트의 최단 거리
 
그리고, 기준이하라고 모두 하자가 아니라고
판정하는 것은 아니고, 누수를 동반하는 균열,
철근 길이 방향으로 발생한 균열, 진행성 균열,
층이음 마무리 불량 등의 경우 하자로
판정 보수토록하고 있습니다.

< 보도내용(7.25자, 내일신문) >
□ 아파트 콘크리트 갈라지는데 - 하자 아니라는 국토부 고시
ㅇ ‘콘크리트 0.3mm 미만 균열‘ 놓고 혼란 가중
ㅇ 법원은 0.3mm 미만도 하자로 판정,
    국토부 고시 개정 필요

“12월 건설업 구조조정 방안 나온다” 보도 관련

[참고] “12월 건설업 구조조정 방안
나온다” 보도 관련

부서:건설정책과    등록일:2017-07-25 17:35

정부가 12월 건설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스마트 건설 기술의 확보,
해외건설 수주를 위한 역량 강화,
전문 기술인력의 양성 등을 주요 골자로 하여
미래에 대비한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12월 중 발표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건단련과 공동으로
전문 기관(보스턴컨설팅그룹)의 연구용역을
추진 중에 있으며, 동 연구용역의 결과를 토대로
업계와 민간전문가 의견 등을 폭넓게 수렴하여
방안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 보도내용(7.25 조선비즈) >
◈ 12월 건설업 구조조정 방안 나온다.
- 문재인 정부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 12월 건설업 분야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을 것

평택~포승 철도건설공사 실시계획 변경 승인

포승-평택 철도건설공사 실시계획 변경 승인

담당부서:철도건설과      담당자:이주수
전화번호:044-201-3956   등록일:2017-07-25


◉국토교통부고시제2017- 505호

포승-평택 철도건설공사 실시계획 변경 승인

국토교통부고시 제2017-410호(관보 제19033호, 2017.06.20.)로
고시된 포승-평택 철도건설공사 실시계획을
「철도건설법」 제9조제8항에 따라 변경 승인하고,
같은 법 시행령 제14조제3항에 의거 다
음과 같이 변경 승인되었음을 고시합니다.
 
          2017년 7월 일
         국토교통부장관






청북 청북고등학교

청북지구에 청북고등학교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청북면(읍)에는 고등학교가 없었지요.

청북고등학교는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활용되고,
주변이 아파트와 체육공원이 들어서 있어서 좋고
옆에 골프장도 생길 예정이여서 환경이 나쁘지는
않지요.

청북고등학교
청북고등학교 옆 골프장이 들어설 곳
청북고등학교 옆 새롭게 생긴 마트
청북고등학교
청북고등학교

청북 청옥중학교

청북지구 청옥중학교 모습입니다.
청북지구에 있는 학교들을
한 곳으로 모아서 학교단지를 만들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이미, 거리가 완성이 되었기에
어떻게 해볼수가 없지요.


청옥중학교
청옥중학교
청옥중학교
청옥중학교
청옥중학교

청북 청옥초등학교

청옥초등학교는 청북지구에 새롭게
개교를 했던 학교입니다.
아쉬운것은, 청북지구에는
청옥초등학교(병설유치원 포함),
청옥중학교는 "청옥"으로 같은데
청북지구에 소재한 청북고등학교는
"청북"으로 청북고등학교도 청옥고등학교로
통일을 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학교명이 지명을 반영해야 하지만요.


청옥초등학교
청옥초등학교
청옥초등학교
청옥초등학교
청옥초등학교

평택시 고덕면의 지명유래

평택시 고덕면이
고덕신도시 조성공사가 완성된다면
고덕면이라는 지명은 사라지고
고덕..동(洞)으로 불려지지 않을까요.

고덕면의 지명유래

궁리
궁리(宮里) : 마을에 궁전 같은 큰 집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현리
고려시대 말부터 마을 뒷산에 성황당이 있어
당고개[堂峴] 또는 당밑`─`당아래의 뜻`─`으로 불리었다.
얼마전까지 당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고개[峴] 너머에 서당[堂]이 있어서
‘글당이'라고도 한다.

동고리
동고(東古) : 고덕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청리
동청(東淸) : 동쪽[東]에 맑은 물[淸]이 흐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두릉리
지리적으로 마을 앞에 큰 두릉축이 있었다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마을 앞의 언덕[陵]이 울창한 숲으로 막혀[杜]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문곡리
문곡(文谷) : 예전에 글을 좋아하고
학식있는 문사(文士)들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방축리
방축(防築) : 예전에 방죽 즉 물을 막는[防]
축대[築]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여염리
여염(余染) : 여씨(余氏)가 처음 살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율포리
율포(栗浦) : 예전 양성현에 속하였고
황구지천에 인접한 포구[浦]로서
주변에 밤[栗]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좌교리
좌교(坐橋) : 마을 앞 얕은 개울에
앉은[坐] 다리[橋]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창리
해창(海倉) : 예전에 이곳은 바다[海]에 인접하였으며
주변 지역의 조세를 모아 보관하다가
서울로 조운(漕運)하기 위한 창고[倉]가 있었다.

평택시 서탄면의 지명유래

서탄면의 지명유래

금각리
금각(金角) : 마을의 지형이 소뿔[牛角]처럼 되어 있다고 하여
쇠뿔이 되고 쇠가 다시 쇠[金]로 바뀌었으며
한자로 표현되면서 금각리가 되었다.

금암리
금암(金岩) : 마을의 지형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며,
마을 옆 산에 북바위라는 암석이 있으므로
두 가지 특징을 따서 금암이라 했다고 한다.

내천리
내천(奈川) : 급한 일로 이곳을 지나던 길손이
마을 서쪽에 있는 황구지천을 건너려다가
물살이 세고 험하자 망연히 서서
“어찌하리오[奈何]”라고 탄식하였으므로,
‘어찌[奈] 개울[川]을 건너리오'라는 뜻으로
내천이라 하였다고 한다.

마두리
마두(馬頭) : 서탄면의 전체적인 형상을 보면
이곳이 말의 머리부분에 해당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밖에 금암리는 심장부, 사리는 꼬리, 회화리는 앞발,
적봉리는 뒷발에 해당된다고 한다.

사리
사리(寺里) : 예전에 절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수월암리
수월암(水月岩) : 전설에 의하면
한 청춘과부가 독수공방으로 기나긴 밤을 지새기 어려워
마음을 달래다가 고아한 달밤에 산밑을 구비쳐 흐르는
냇물에 비치는 달무리에 취하여 읊은 시에
“개울물[水]은 바위[岩]를 구비쳐 흐르는데
둥근달[月]은 고요하다” 라고 하였으며
이것을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장등리
장등(長登) : 예전에 큰 홍수가 있을 때
황구지 일대의 사람들이 물난리를 피하여
이곳 긴 능선지대로 옮겨 왔다가 정착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적봉리
적봉(赤峰) : 마을 산봉우리의 흙이 황토색이며
산에 나무가 나지 않아 적봉리라고 했다.

​황구지리
황구지(黃口池) : 진위천과 오산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였으며 예전에 항곶포(亢串浦)가 있었는데,
항곶이 또는 항고지가 되며 뒤에 음운이 변화하면서
황구지로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홍수 때면 누런 흙탕물로 땅도 누렇게 된다하며
습지에다 물결에 패인 웅덩이가 곳곳에 있어
누런[黃] 물색을 띤 하구(河口)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회화
회화(檜花) : 마을에 회화나무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평택시 진위면의 지명유래

진위면의 지명유래

​가곡리
가곡(佳谷) : 마을의 산과 골짜기[谷]가
아름다워[佳]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갈곶리
갈곶[葛串] : 이 마을은 높은 산맥이 뿌리를 내려
길게 뻗어나간 칡덩쿨[葛] 같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오산천변에 위치하여 곶(串)이 형성된 지역이어서
갈곶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나루터가 있었다.

견산리
견산(見山) : 이 마을에는 고구려 때의 토성이 있었고,
성에 견적대(見敵臺)라는 망루가 있어 사면을 볼 수 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고현리
고현(高峴) : 마을에 높은[高] 재[峴]가 있던 데서
유래한 것 같다.

동천리
동천[東泉] : 마을에 좋은 샘[泉]이 있고,
동쪽[東]에 물이 마르지않는 전답이 있어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옛부터 마을 동쪽에 있는 전답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풍년이 든다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동쪽[東]에 있는 전답에는 샘[泉]에서 물이 나와
가뭄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지어진 듯하다.

마산리
마산(馬山) : 조선시대 진위현 마산면 지역이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914년 북면과 통합되면서 리가 되었다.

봉남리
봉남(鳳南) : 무봉산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

신리
신리(新里) : 벌판에 새로이[新] 형성된 마을[里]이라는 뜻.
조선시대에 장호원이 있었다고 한다.

야막리
야막(野幕) : 예전에 유민이 이곳에서
전답을 개간하기 위해 넓은 들판[野] 가운데
막[幕]을 치고 살았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은산리
은산(銀山) : 마을에 은을 캐던 은구덩이가 있던
산이라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봉화정씨가 처음 터를 잡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이 산에 머무르라는 계시를 받았고
뒷산이 모두 은으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청호리
청호(淸湖) :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청호역(菁好驛)이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뒤에 지금의 한자로 바뀐 듯하다.

산과 숲이 우거진 곳에 맑고[淸] 아름다운 호수[湖]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북리
하북(下北) : 고구려 때 축성된 (부산현는 부성현) 산성의
북쪽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1번 국도와 철도가 놓이면서 생긴 마을로
진위천[河] 북쪽[北]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가 한자가 변화한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팽성읍의 지명유래

팽성읍의 지명유래

객사리
객사(客舍) : 평택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청을 찾아오는 벼슬아치나 양반이 묵던 숙소인
객사가 있었던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근내리
근내리(近乃里) : 그네리를 한자로 옮긴 것.

남산리
남산(南山) : 평택현 관청 남쪽의 산에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내리
내리(內里 : 옛 아산현 읍내면의 중심지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옛 백제시대 하팔현의 읍치(邑治)였던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노성리
노성(老成) : 1934년 행정구역 변경 때,
노중리, 노상리와 신성리가 합치면서
노중·노상의 ‘노'와 신성의 ‘성'을 따서
마을 명칭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노양리
노양(老陽) : 경양면(慶陽面)의
인처리(仁處里)·노산리가 합치면서
노산리의 ‘노'와 경양의 ‘양'을 따서 마을 명칭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노와리
노와(老瓦) : 예전 아산현의 ‘노연리(老連里)'와 ‘와야리'
두 마을이 합쳐지면서 각각의 첫 자를 따온 것.

대사리
대사(大沙) : 조선초기에 형성된 포구를 낀 마을이었는데,
모래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추리
대추(大秋) : 개펄을 간척한 토지에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산리
한산(閑山) : 처음에는 한미한 곳이라하여
한미라고 하다가 식민지시대부터 갯가의
한미한[閑] 산턱[山]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한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도두리
도두(棹頭) : 『여지도서』 등에는
도두정(棹頭亭)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입구에는 도두암(棹頭巖)이라는
높은 바위벼랑이 있다.
이곳에는 성리학자인 우남양(禹南陽) 처사가 살고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벗이었던 홍익한이 심양에서
순절한 것을 알고 벼랑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였다 하여 부술 돈(頓)과 머리 두를 따서
돈두정리(頓頭亭里)라고 하였다.
그 후 행정 개편 때 서해의 조수가 드나드는 곳으로
돛단배가 왕래하였으므로 돛대란 뜻의
‘도'와 돈두암에 얽힌 사연의 ‘두'를 따서
도두리라고 고쳤다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 앞이 바다와 갯벌로 이루어져서,
지형이 돛대머리와 같다고하여 도두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창리
동창(東倉) : 옛 하팔현의 중심 읍내로 내리라고 하였으며,
또는 서면 내리라고도 하였다. 내리의 동쪽에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듯하다.

​두리
두리(頭里) : 마을 입구의 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마을이 소의 머리[頭]에 해당한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두정리
두정(斗井) : 두곡리와 월정리를 합치면서
새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본정리
본정(本井) : 예전의 본언리(本堰里)와 경정리(鯨井里)의
일부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본'과 ‘정'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수리시설인 제언이
있었다고 한다.

석근리
석근(石斤) : 석교리와 서근포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마을의 명칭 가운데 ‘석'과 ‘근'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석봉리
석봉(石峰) : 흑석리(黑石里)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안성천 하류에 서해안 개펄과 접하는 곳에 있다.
마을에 홀로 떨어진 자그마한 산봉우리가
물결을 타고 앉았는데, 그 곳에 검은 돌이 있다 하여
흑석리라고 하였다.
뒤에 검은 돌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석봉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흑석리와 원봉리가 합쳐지면서 ‘석'과 ‘봉'을 떼어
지었다고도 한다.

송화리
송화(松花) : 송중리(松中里)·송하리(松下里)·개화리(開花里) 등
세 마을이 합쳐지면서 ‘송'과 ‘화'를 따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신궁리
신궁(新宮) : 신흥리(新興里)와 하궁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신'과 ‘궁'을 따서
이름지었다고 한다.

신대리
신대(新垈) : 새로이[新] 터[垈]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후기 마을이 새로 생기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호리
신호(新虎) : 호치 마을과 신촌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신'과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안정리
안정(安亭) : 안현리(鞍峴里)와 서정자(西亭子)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 마을 명칭의 ‘안'과 ‘정'을따서
안정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鞍'이 ‘安'으로 바뀌었다.

원정리
원정(院井) : 고려 때 이곳 탑상골에 있었던
원정사(院井寺)란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온양 방씨 시조가 정착하면서 절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좋은 물이 나는 우물이 있어
그 이름을 마을 명칭으로 하였다고 한다.

추팔리
추팔(秋八) : 『여지도서』에는 추팔리(楸八里)로
기록되어 있다.
여덟 곳의 마을에서 물이 흘러들어와 매년 풍년을
맞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평궁리
평궁(坪宮) : 상평리와 상궁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 명칭 가운데 자인 ‘평'과 ‘궁'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함정리
함정(咸井) : 함등촌(咸登村) 또는
함정촌(咸井村)과 경정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함'자와 ‘정'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송탄의 지명유래

송탄의 지명유래

서정동
예전 양성현에 속하였을 때 서쪽[西]이었고
물맛 좋은 우물[井]이 있었다 하여 유래했다고 하며,
400여 년전에 화강암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틀이 현존한다.

현재 행정구역상 서정동은 송탄읍이 시로 승격하고
동을 나눌 때, 서정동의 주요지역이 번지상
서정 ○○○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정해진 것으로,
실제 동명의 유래가 된 서정리는 중앙동에 속한다.

송탄동
가재(佳材) : 마을이 위치한 산의 모양이
가재와 같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일(道日) : 여좌울·여좌월 또는 되일리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모곡(茅谷) : 1통의 마을 이름. 마을 옆을 지나는
도일천 변에 띠풀이 무성하였으므로
띠풀[茅]이 많은 고을[谷]의 의미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장안말(長安―) : 오래 전에 장터거리가 있었으므로
‘장터안 마을'이란 뜻의 장안말이 되었다고 한다.
한자는 별 의미 없이 그것을 음차한 것 같다.
칠괴(七槐) : 예전에 이 마을 공동우물 주변에
7그루의 느티나무[槐]가 있었는데,
나무의 신령으로 7장사가 태어났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마을에 7개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칠원(七院) : 9통의 마을 이름.
본래 갈원(葛院)으로 불리다가 조선말기에 칠원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삼남대로에 위치하여
국가에서 운영하는 숙박소인 원이 있던 곳으로
주변에 칡이 많아 명칭으로 삼게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말기의 어느 왕이 각 고을을
순례하다가 갈원에서 머물렀는데, 병이나
그 원인을 따지니 "칡 때문이었다"
혹은 "지병이 나았다고도 한다"하여
그 이후부터 칠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칡은 한자로 갈이므로 갈원은
마을의 특징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고, 칠원은 음차한 것이다.

한편 갈왕골 또는 갈왕굴이라는 명칭은
칡이 무성한 고을이라는 뜻이다.

신장동
한국 전쟁 이후 미군 기지가 들어서고 인구가 늘자
새로운[新] 장[場]이 형성되었다고 유래했다고 한다.

구장터를 대신하여 들어선 새로운[新] 장터[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중앙동
이충(二忠) : 조선 중종대 충신 조광조(趙光祖)가
이곳에서 소년기를 보냈고 인조대의 충신 오달제(吳達濟)의
옛 집이 있었기 때문에 두 충신의 발자취가 있는 곳이라는 뜻.

장당(獐堂) : 이곳에 있는 산이 노루[獐]의 형상이고
근처에 인가[堂]가 있다 하여 지었다고 한다.

중앙 : 1981년 7월 평택군 송탄읍이 송탄시로 승격되면서
시의 중앙에 있었으며, 시청사가 중앙마을에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평택시의 지명유래

평택의 지명유래

비전동
마을이 큰 비(碑)가 있는 앞[前]에 있었다 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덕동산 기슭에 있던 부처골의 비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는 그 비가 대동법시행기념비일 수도 있다.

세교동
세교(細橋) : 예전에 평택을 가기 위해
통복천을 건너는 길고 가느다란[細] 다리[橋]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평동
신평(新平) : 경부선 철도가 건설된 이후
현재 평택역의 남쪽에 시가지가 형성되었으나
1946년 대홍수를 겪고난 뒤 이전 논의가 일어나고
한국전쟁 이후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현재의 지역에 새로이 시가지가 형성된 곳이라는
뜻에서 지어졌다.

​원평동
원평(原平) : 경부선이 부설되고 평택역이 생기면서
시가지가 형성된 곳으로 대홍수 이후 수리에 문제가 있어
경부선 동쪽으로 역과 시가지가 옮겨지기 전까지
예전[原]에 평택의 중심지가 있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통복동
통복(通伏) : 예전에 통보(通洑)라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뒤에 통복보로 바뀌면서
이 지역의 이름에 통복이 붙기 시작하였다.

평택시 포승읍의 지명유래

포승면의 지명유래

​내기리
내기(內基) : 예전에 함평이씨 이중길(李仲吉)이란 학자가
개성에서 이주해와 이곳 안[內] 터[基] 마을에 정착하였으며,
뒤에 안쪽 마을이란 뜻의 안터가 한자식으로
표기되면서 내기리가 되었다고 한다.

도곡리
도곡(道谷) : 마을 앞 불당산(佛堂山)에 절이 있었고,
그곳의 승려들이 수도하였기 때문에
도를 닦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만호리
만호(晩湖) : 예전에 만포(晩浦)라는 포구가 있었으며
호서[湖] 지방인 충청도와 바다를 두고 맞닿아 있어
두 글자를 합하여 지었다고 한다.

방림리
방림(芳林) : 고려말에 함양(咸陽) 박씨가 정착하여 살았는데,
소나무 숲[林]이 울창하고 아름답다는[芳]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석정리
석정(石井) : 마을이 처음 생길 때
먹을 물을 찾아 여러 군데를 파보았는데
서쪽편 돌[石]에서 좋은 물[井]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영리
신영(新榮) : 옛날 이곳에 면사무소와 장터가 있었는데,
그 장터가 새롭게[新] 번영[榮]하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원정리
원정(遠井) : 예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
가까운 데서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으나
아주 먼[遠] 곳에서 맑고 깨끗한 샘을 찾아
그것을 우물[井]로 이용한 데서 마을의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홍원리
홍원(洪原) : 조선시대에는 홍원(弘原)이라고도 표기하였다.
지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곶지역으로 목초지가 있었고
그곳에 군마를 놓아 길렀다고 하는데,
넓은[洪] 들[原]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희곡리
희곡(希谷) : 마을이 평야지대에 있어
산골짜기[谷]가 드믈었다는[希]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평택시 현덕면의 지명유래

현덕면의 지명유래

​권관리
권관(權管) : 예전에 이 마을에 권세를 부리는
아전배(衙前輩)들이 살아 권관(權官)이라고 하다가
뒤에 권관(權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기산리
기산(岐山) : 현덕면 남부에 있는 옥녀봉(玉女峰)이
 우뚝 솟아 있는 산(山) 줄기가 갈라진 곳[岐]에
마을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안리
대안(大安) : 예전부터 마을에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많고
인심이 좋아 길손이 들면 집집마다 사랑방에 머물며
대접을 잘 하였기 때문에 이 만큼의 생활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크게[大] 편안[安]하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덕목리
덕목(德睦) : 고려말 조선이 건국하자
두문동에 은거했던 어촌(漁村) 공부(孔俯) 선생이
조선왕조에서 벼슬하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이 마을로 와서 살게되었는데, 그가 덕행(德行)과
화목(和睦)을 강조했다는 데서 덕목이라고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도대리
도대(道垈) : 마을 앞 갯고랑에 고목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 마치 배의 돛대와 같았으므로
마을 이름을 돛대라고 하다가 도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방축리
방축(防築) : 마을 앞에 바닷물을 막는
방축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운정리
운정(雲井) : 마을의 형상이 구름 속의 반달 모양을 닮았고,
마을에 큰 우물이 있는데 물맛이 차고 시원하며
우물 둘레에 항상 안개가 서려 있어
구름이 덮혀 있는 듯하기 때문에 구름[雲]과
우물[井]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인광리
인광(仁光) : 예전부터 농가 10여호가 오순도순 살면서
어질고[仁] 착하게 살아서 그 빛[光]이 영원하기를
소원하여 인광으로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한다.

장수리
장수(長水) : 처음에 두메라고 불리다가
그 뜻이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이름을 고쳤는데,
마을 옆으로 바다가 있어 길게[長] 물[水]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화양리
화양(華陽) : 예전에 마을이 생기던 해에
주변 마을은 장마가 지속되었으나,
이 마을은 비가 자주 오지 않고 해가 자주 났으므로
햇볕[陽]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황산리
황산(黃山) : 마을이 야산지대[山]에 있으며,
처음에 황씨[黃]가 정착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안중리(安仲里)라고 불렸다고 한다.

평택시 청북읍의 지명유래

청북읍의 지명유래

고렴리
고렴(古念) : 예전 이곳에는 감미면(甘味面) 사무소가
있었던 곳으로,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면사무소가 이전하게 되자 면사무소가 있었던
옛[古]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念]하겠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고잔리
고잔(高棧) : 마을이 해안과 접하여
갯고랑의 높은[高] 잔다리[棧]를 건너다닌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서울에서 벼슬하던 한 양반이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왕이 계시던 서울을 못잊어
높은 곳에 올라가 서울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백봉리
백봉(栢峰) : 옛날 이곳에는 잣나무[栢] 숲이 울창한
봉우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계리
삼계(三溪) : 지리적으로 세[三] 갈래의 계곡[溪]에서
흐르던 물이 이 마을에서 만나 합쳐져
서해로 흐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소리
어소(魚沼) : 예전에 연못[沼]에 있었고
이곳에서 물고기[魚]를 길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연리
어연(魚淵) : 마을 앞에 큰 연못[淵]이 있었으며
그곳에는 각종 물고기[魚]들이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옥길리
옥길(玉吉) : 예전 이 마을 사람들이 조개잡이를 하여
생계를 이어왔는데, 조개껍질이 다양하게 아름다워
마치 옥(玉)과 같았고, 마을 사람들이 길하게
잘 살자는 뜻에서 옥길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율북리
율북(栗北) : 마을에 밤나무[栗]가 울창하여
밤이 많이 났으며, 청북읍의 북쪽[北]에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토진리
토진(土津) : 예전에 이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고
나루터가 있어 길손들이 왕래했으며
그 나루터 이름이 톳[土]나루[津]였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산리
한산(閑山) : 처음에는 한미한 곳이라하여
한미라고 하다가 식민지시대부터 갯가의
한미한[閑] 산턱[山]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한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현곡리
현곡(玄谷) : 한자상의 뜻은 깊은 골짜기인데,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후사리
후사(後寺) : 예전에 큰 절이 있었으며
신도가 많아지면서 절[寺] 뒤[後]에 마을이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평택시 안중읍의 지명유래

안중읍의 지명유래

​금곡리
금곡(金谷) : 마을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臥牛] 형태라 하여 소골[牛谷]이라 하다가
쇠[金] 골이 되면서 금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반리
대반(大盤) : 마을의 형상이 큰[大] 밥상[盤]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덕우리
덕우(德佑) :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덕으로 도우라는 뜻이다.

삼정리
삼정(三井) : 마을에 세[三] 개의 큰 우물[井]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왕자봉(王子峰)이라는 산이 있는데,
삼정승이 나올 형세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장수 가토오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산세를 끊어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성해리
성해(城海) : 포승면 석정리였다가
안중면이 생기면서 새로이 만들어진 마을인데,
성외(城外) 마을과 해조(海潮) 마을로 구성되었으므로
두 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성해로 지었다고 한다.

송담리
송담(松潭) : 예전에 현덕면 인광리였는데
안중면이 생기면서 행정리가 되었다.
소나무 숲[松]이 우거진 곳에 연못[潭]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중리
안중(安仲) : 예전에 직산 장터가
현덕면 황산리에 있었는데, 그곳의 양반인
동래(東萊) 정씨가 장사치들을 천대하여 내쫓자
추방당한 보부상들이 이 마을에 장터를 이루고
안중시장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성리
용성(龍城) : 예전에 용성현(龍城縣)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이 없으나 예전에 어느 재상이
용(龍)의 형상으로 성(城)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학현리
학현(鶴峴) : 마을에 연못이 있었으며,
이 연못 언저리 나무에 학이 많이 깃들어 있어
유래했다고 한다.

마을의 형상이 학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화리
현화(玄華) : 처음에 현덕면 화양 3리와 4리였다가
뒤에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행정리가 설치되자
본래 현덕면(玄德面) 화양리(華陽里)였으므로
그 앞자를 따서 현화리라고 했다고 한다.

평택시 오성면의 지명유래

오성면의 지명유래

교포리
교포(橋浦) : 예전의 갯가 마을로 포구[浦]가 있었으며,
지대가 낮아 바닷물이 많이 들어 작은 쪽다리[橋]를 놓고
통행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길음리
길음(吉音) : 뒷산에서 이상한 소리[音]가 나면
마을에 좋은[吉] 일이 생기므로, 그 소리를 고대하면서 ‘
길음'이라고 마을 이름을 정하였다고 한다.

당거리
당거리(堂巨里) : 예전에 이 마을에는
큰[巨] 집[堂]을 짓고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보통 이런 마을 이름은 성황당이나 당집이 있는
큰 거리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신리
신리(新里) :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해 생긴 터에
새로이[新] 생긴 동네[里]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화리
안화(安化) : 예전에 바닷가 마을로서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산턱이 씻겨 무너져 내려와
흙이 쌓이면서 마을의 터가 이루어졌는데,
처음 안씨네가 정착하여 살면서 안씨네[安]가
흥성[化]하자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양교리
양교(梁橋) : 이 마을은 지대가 낮아
사방으로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梁橋]를 놓고
건너 다녔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죽리
죽리(竹里) : 예전 이 마을에 대나무숲[竹]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창내리
창내(倉內) : 흙을 파서 둑을 쌓은 형태를 창이라 하는데,
이후 이곳의 안쪽에 마을이 생겼났으므로
창[倉]의 안쪽[內]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본래 버들과 갈대가 무성한 곳에
갯벌 굴착공사를 해서 새긴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