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읍의 지명유래
금곡리
금곡(金谷) : 마을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臥牛] 형태라 하여 소골[牛谷]이라 하다가
쇠[金] 골이 되면서 금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반리
대반(大盤) : 마을의 형상이 큰[大] 밥상[盤]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덕우리
덕우(德佑) :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한자를 그대로 풀면 덕으로 도우라는 뜻이다.
삼정리
삼정(三井) : 마을에 세[三] 개의 큰 우물[井]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왕자봉(王子峰)이라는 산이 있는데,
삼정승이 나올 형세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장수 가토오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산세를 끊어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성해리
성해(城海) : 포승면 석정리였다가
안중면이 생기면서 새로이 만들어진 마을인데,
성외(城外) 마을과 해조(海潮) 마을로 구성되었으므로
두 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성해로 지었다고 한다.
송담리
송담(松潭) : 예전에 현덕면 인광리였는데
안중면이 생기면서 행정리가 되었다.
소나무 숲[松]이 우거진 곳에 연못[潭]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중리
안중(安仲) : 예전에 직산 장터가
현덕면 황산리에 있었는데, 그곳의 양반인
동래(東萊) 정씨가 장사치들을 천대하여 내쫓자
추방당한 보부상들이 이 마을에 장터를 이루고
안중시장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성리
용성(龍城) : 예전에 용성현(龍城縣)의 치소(治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이 없으나 예전에 어느 재상이
용(龍)의 형상으로 성(城)을 쌓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학현리
학현(鶴峴) : 마을에 연못이 있었으며,
이 연못 언저리 나무에 학이 많이 깃들어 있어
유래했다고 한다.
마을의 형상이 학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화리
현화(玄華) : 처음에 현덕면 화양 3리와 4리였다가
뒤에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행정리가 설치되자
본래 현덕면(玄德面) 화양리(華陽里)였으므로
그 앞자를 따서 현화리라고 했다고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