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5일 화요일

팽성읍의 지명유래

팽성읍의 지명유래

객사리
객사(客舍) : 평택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청을 찾아오는 벼슬아치나 양반이 묵던 숙소인
객사가 있었던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근내리
근내리(近乃里) : 그네리를 한자로 옮긴 것.

남산리
남산(南山) : 평택현 관청 남쪽의 산에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내리
내리(內里 : 옛 아산현 읍내면의 중심지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옛 백제시대 하팔현의 읍치(邑治)였던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노성리
노성(老成) : 1934년 행정구역 변경 때,
노중리, 노상리와 신성리가 합치면서
노중·노상의 ‘노'와 신성의 ‘성'을 따서
마을 명칭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노양리
노양(老陽) : 경양면(慶陽面)의
인처리(仁處里)·노산리가 합치면서
노산리의 ‘노'와 경양의 ‘양'을 따서 마을 명칭을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

노와리
노와(老瓦) : 예전 아산현의 ‘노연리(老連里)'와 ‘와야리'
두 마을이 합쳐지면서 각각의 첫 자를 따온 것.

대사리
대사(大沙) : 조선초기에 형성된 포구를 낀 마을이었는데,
모래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추리
대추(大秋) : 개펄을 간척한 토지에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산리
한산(閑山) : 처음에는 한미한 곳이라하여
한미라고 하다가 식민지시대부터 갯가의
한미한[閑] 산턱[山]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한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도두리
도두(棹頭) : 『여지도서』 등에는
도두정(棹頭亭)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 입구에는 도두암(棹頭巖)이라는
높은 바위벼랑이 있다.
이곳에는 성리학자인 우남양(禹南陽) 처사가 살고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벗이었던 홍익한이 심양에서
순절한 것을 알고 벼랑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였다 하여 부술 돈(頓)과 머리 두를 따서
돈두정리(頓頭亭里)라고 하였다.
그 후 행정 개편 때 서해의 조수가 드나드는 곳으로
돛단배가 왕래하였으므로 돛대란 뜻의
‘도'와 돈두암에 얽힌 사연의 ‘두'를 따서
도두리라고 고쳤다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 앞이 바다와 갯벌로 이루어져서,
지형이 돛대머리와 같다고하여 도두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창리
동창(東倉) : 옛 하팔현의 중심 읍내로 내리라고 하였으며,
또는 서면 내리라고도 하였다. 내리의 동쪽에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듯하다.

​두리
두리(頭里) : 마을 입구의 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국으로
마을이 소의 머리[頭]에 해당한다 하여 유래했다고 한다.

두정리
두정(斗井) : 두곡리와 월정리를 합치면서
새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본정리
본정(本井) : 예전의 본언리(本堰里)와 경정리(鯨井里)의
일부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본'과 ‘정'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수리시설인 제언이
있었다고 한다.

석근리
석근(石斤) : 석교리와 서근포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마을의 명칭 가운데 ‘석'과 ‘근'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석봉리
석봉(石峰) : 흑석리(黑石里)라고도 한다.
이 마을은 안성천 하류에 서해안 개펄과 접하는 곳에 있다.
마을에 홀로 떨어진 자그마한 산봉우리가
물결을 타고 앉았는데, 그 곳에 검은 돌이 있다 하여
흑석리라고 하였다.
뒤에 검은 돌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에서
석봉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흑석리와 원봉리가 합쳐지면서 ‘석'과 ‘봉'을 떼어
지었다고도 한다.

송화리
송화(松花) : 송중리(松中里)·송하리(松下里)·개화리(開花里) 등
세 마을이 합쳐지면서 ‘송'과 ‘화'를 따서
지은 명칭이라고 한다.

신궁리
신궁(新宮) : 신흥리(新興里)와 하궁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신'과 ‘궁'을 따서
이름지었다고 한다.

신대리
신대(新垈) : 새로이[新] 터[垈]를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후기 마을이 새로 생기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호리
신호(新虎) : 호치 마을과 신촌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명칭 가운데 ‘신'과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안정리
안정(安亭) : 안현리(鞍峴里)와 서정자(西亭子) 마을이
합쳐지면서 두 마을 명칭의 ‘안'과 ‘정'을따서
안정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鞍'이 ‘安'으로 바뀌었다.

원정리
원정(院井) : 고려 때 이곳 탑상골에 있었던
원정사(院井寺)란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온양 방씨 시조가 정착하면서 절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좋은 물이 나는 우물이 있어
그 이름을 마을 명칭으로 하였다고 한다.

추팔리
추팔(秋八) : 『여지도서』에는 추팔리(楸八里)로
기록되어 있다.
여덟 곳의 마을에서 물이 흘러들어와 매년 풍년을
맞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평궁리
평궁(坪宮) : 상평리와 상궁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 명칭 가운데 자인 ‘평'과 ‘궁'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함정리
함정(咸井) : 함등촌(咸登村) 또는
함정촌(咸井村)과 경정리가 합쳐지면서 두 마을의
‘함'자와 ‘정'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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